서울 금천 100억대 전세사기…임차인 ‘피눈물’-피해구제 ‘안갯속’ 시흥동 일대 빌라 줄줄이 ‘보증금 미반환’ 사태 경매에 압류까지…피해 임차인만 80여명 훌쩍 피해자 인정 2건 그쳐…어려운 ‘고의성’ 입증 특별법 2년 연장에도 실질적 지원 거의 없어 신재원 기자 oceanjournal@naver.com

2025년 05월 27일(화) 07:26

서울 금천구에서 100억원대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했지만 임차인들의 피해구제는 요원하다

[해양수산일보 = 신재원 기자] 서울 금천구에서 100억원대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했지만 임차인들의 피해구제는 요원하다.

임대인들이 소유한 10여 채의 빌라는 현재 대부분 경매에 넘어가거나 가압류된 상태로 청소 및 분리수거 등 건물 관리는 수개월째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기마저 끊길 위기에 처하면서 임차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미납 요금을 대납하며 버티고 있다.

27일 금천전세사기피해자모임(가칭)에 따르면 최근 전세사기특별법이 2년 더 연장됐지만 이들 임차인 대부분은 실질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기’와 ‘고의성’을 입증해 전세사기피해자로 인정된 임차인이 거의 없어서다.

금천구 시흥동 일대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임차인들은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퇴거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임대인들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다.

임대인 A씨를 주축으로 2~3명이 개별 또는 공동명의로 소유한 빌라는 파악된 것만 16채에 이른다. 이들은 금천구를 비롯해 관악구 등지에 다가구·다세대 주택 등을 보유하고 있다.

임차인 대부분은 20~30대로 피해 사례도 제각각이다. 임대인으로부터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임차인이 있는가 하면, 우편함에 법원 경매통지서가 꽂힌 이후에서야 피해 사실을 인지한 임차인도 적지 않았다.

금천전세사기피해자모임 관계자는 “피해자 중에는 신혼집 계약까지 모두 마쳤으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임차인도 있다”며 “피해자가 이렇게 속출하는데 임대인들은 임차인 연락을 일부러 회피하고 문제 있는 집을 또 다시 전·월세로 놓으려는 정황도 있어 답답할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이들 피해자모임에 따르면 보증금 미반환으로 발 묶인 임차인은 현재 확인된 규모만 80여명이다. 피해 보증금 규모는 수천만원에서 1억~2억원 안팎으로 실제 피해 규모는 100억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것은 물론 임대인들이 공용 관리비 등을 제때 납부하지 않으면서 최근 들어 전기요금 등도 임차인들이 십시일반 모아내는 실정이다.

정부가 마련한 전세사기특별법이 최근 2년 더 연장됐지만 그에 따른 지원도 ‘그림의 떡’이라는 게 피해 임차인들의 목소리다. 임대인이 임차인을 기망할 의도를 가지고 계약을 맺었다는, 고의성을 임차인들이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탓에 피해자로 인정받기 쉽지 않아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23년 6월 특별법 시행 이후 국토부가 처리한 전세사기피해신청 접수 건수는 지난 4월 기준 4만3624건에 이른다.

이 중 2만9540명이 피해자로 인정됐으며 피해자 요건 미충족으로 부결된 건수는 7644건 정도다. 피해자 요건 미충족 사항의 다수를 차지하는 항목은 특별법 제 3조 제 1항3호·4호 ‘다수피해 발생, 보증금 미반환 의도 미충족’(34.7%), 제3조제1항4호 ‘보증금 미반환 의도 미충족’(63.8%) 등으로 조사됐다.

전세사기피해자로 인정받아야 경매 유예나 정지 신청은 물론 LH 경매차익을 활용한 피해주택 매입 신청, 법률 자문, 금융 지원 등이 가능하다.

하지만 금천구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가운데 피해자 인정을 받은 사례는 2건 정도에 그친다.

한 임차인은 “임대인이 중개업소와 작정하고 사기를 쳤다는 걸 세입자가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 답답하다”며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피해자들끼리 저마다 계약 기간, 보증금 규모, 피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을 싹싹 긁어 모으는 중”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국토부 전세사기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며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는데 그 문턱이 너무 높다”며 “피해를 임차인들이 오롯이 다 떠안으라는 격”이라고 하소연했다.

사기와 기망행위 입증이 어렵다 보니 경찰 수사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게 임차인들의 설명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빌라시장 침체로 임차인들의 임차권 등기가 하나둘씩 걸리면서 이제는 누구에게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다다른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어서 어렵지만 고의성 입증은 중요한 부분”이라며 “임대인들이 빌라 여러 채를 들고 있고 그 와중에 일부라도 보증금을 반환하는 등 계약 상황이 빌라마다, 임차인마다 달라 피해자 결정을 일률적으로 낼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재원이 투입되는 만큼 피해자 인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법률 지식이 없는 임차인이 대부분인 만큼 세부적인 가이드라인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진단한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고의성 입증은 형사 문제로 봐야 하는데 일반인이 그 피해 사실을 입증한다는 건 법률 지식이 상당히 있어야 해서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편이 맞다”며 “‘사기죄로 볼 가능성이 크다’라는 가이드라인이나 일반인 시선에 맞춘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보통 전세를 통해 자산을 마련하고 축적하기 때문에 월세 시대로 간다 하더라도 전세가 아주 없어지긴 힘들다”며 “특별법 연장에 그칠 게 아니라 실질적인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메뉴얼과 주의사항 등을 촘촘하게 만들어 안전한 임대차 계약을 맺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